2024년 넷째주간 묵상가이드

A. 주일설교 요약 및 묵상질문

마가복음 12 : 1-12 / 내가 드릴만한 것은 있습니까?
사복음서를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말씀하셨던 구원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셔야만 했던 장소는 많지만, 특별히 3곳의 장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3곳 장소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결국 예수님께서 무엇을 이루 시길 원하셨는지 알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께서 꼭 가셔야 했던 장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사는 이 땅에 꼭 오셔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이 말씀의 의미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아담과 하와의 씨앗들을 이 땅에 오신 예수가 악의 세력을 완전히 물리치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혼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만, 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31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두 번째로 가셔야 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십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수살렘으로 입성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찬양했을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째는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예언의 완벽한 성취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스가랴9:9). 두 번째는 스가랴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겸손과 평화의 왕이 되심을 보여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루살렘까지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곳 이 자리까지 오셨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사명은 무엇이냐고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물어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농부인가? 부지런한 농부인가? 정직한 농부인가? 게으른 농부인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오실 때에 심판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심판이 없이는 우리에게 구원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무화과 나무의 심판’, ‘성전을 정화함’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 ‘농부들의 심판’ 그리고 13장에 ‘재난의 징조’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신 후에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포도원은 주님의 ‘첫 사랑’ 입니다. 그 ‘첫 사랑’이 여러분 안에서 뜨겁게 타올라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원하시는 소출의 얼마 뿐 아니라 전부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첫사랑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밖으로 버렸습니다. 우리의 욕심 때문에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심판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첫사랑에 대해서 주님은 결산하실 것이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데 10절 말씀을 보면 그 첫사랑이 나에게 찾아오십니다. 나는 그 첫사랑을 죽여서 포도원 밖에 버렸건만, 그 첫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셔서 나에게 오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구원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때만이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예수님께서 가신 장소는.. 십자가 골고다 언덕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이 되시며, 모퉁이 돌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돌을 버렸지만 그 돌이 우리에게 와서 모퉁이 돌이 되어주셨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주님 앞으로 감으로 주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B. New City Catechism

<문 24> 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는 것이 필요했습니까?
<답> 죽음이 죄를 위한 형벌이었기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권세와 형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되돌리기 위해서 기꺼이 죽으셨습니다. 그의 우리를 대신하시는 속죄의 죽음으로 오직 그가 홀로 지옥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고 우리를 위한 죄의 용서, 의,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21~22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간단한 해설>
성경은 진정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는 것이 왜 필요했는지를 놀랍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죄가 권세를 가지고 죄인들을 지배하며, 그 죄의 댓가로 하나님께 받아야할 형벌야할 절망과 사망에 놓인 우리를 그 상태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참된 구원자의 죽으심이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로, 그 구속주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셔서 그 죄를 속하시는 일이 꼭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으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성취될 수 없었기에,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를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한 자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필요했습니다.

<묵상질문>
죽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과 의, 그리고 죄의 용서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지를 묵상해 봅시다. 영원한 죄의 형벌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받아야할 삶의 구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